Prologue
~도자기의 본고장으로~

그 효시는 가라쓰 기시다케

논밭을 누비며 산골짜기로 이어지는 좁은 길 . 산기슭까지 내린 안개가 이 풍경을 더욱 고요하게 한다 . 예상보다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강변에 기시다케 옛 가마 터가고즈넉이 남아 있었다 . 이곳은 사가현 가라쓰시 기타하타 .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전국시대의 다이묘 하타 일족이 1580년대에 조선에서 도공을 초청하여 가마를열었다고 한다 . 이곳은 가라쓰야키의 발상지이자 일본 자기 탄생의 계보를 전하는 최초의 가마터이다 .

임진왜란(조선 출병)과 히젠의다이묘

 ‘첫째는 이도 다완 , 둘째는 라쿠야키 , 셋째가 가라쓰야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옛 다인들이 선호했던 다도기는 이웃번의 다이묘에게도 매우 매력적이었음에틀림없다 . 1592~1598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에 건너간 히젠의 무장들은 일본으로 귀국할 때 , 많은 수의 조선 도공들을데려왔다 . 그리고 보다 질 좋은 도기를 만들고자 경쟁하듯이 각 번 내에 가마를 열게 된다 .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영지를 몰수당하고 하타 일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기시다케의 도공들은 가라쓰야키의 기술을 가지고 히젠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
 이렇게 조선에서 전해진 기술과 여러칸으로 이어진 오름가마가 특징인 히젠의도자기는 같은 시대에 각각 탄생하게 되었다 .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도자기의 역사를 뒤바꾸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 사가번 초대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중신에게 맡겨진 도공 중 한명인 가나가에 산베 ( 이삼평 ) 가 아리타의 이즈미야마에서 양질의 도석을 발견한 것이다 .

기시다케 옛 가마 터
조선과 중국계의 소성기술을 사용하여 도기가 구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나카노가마터
히라도번의 영주인 마쓰라 시게노부가 조선에서 데려온 고세키 등 100명의 도공이 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라쓰야키를 계승하는 도공들은거친 흙의 질감을 살려 소박하고깊은 정취를 만들어낸 것이다.

히라도 나카노 가마에서 만들어진나카노야키. 도기 위에 질감을 내기 위해 군청색 잿물로 문양을 그렸다.

 

제1장 일본 자기의 탄생
~도자기의 시조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산~

이즈미야마 자석장의 발견

사가현 니시마쓰우라군 아리타초 이즈미야마 . 광범위하게 깎여있는 이즈미야마자석장의 경관은 압도적인 박력으로 400여년의 역사를 말해 준다 . 17세기 초 이삼평이 최초로 발을 내딛었을 때의 자석장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 자기의 원료가 되는 돌을 자석이라 하며 히젠 등에서는 도석이라 부른다 . 그는 이즈미야마의 도석을 사용하여 일본에서 처음으로자기 단독 가마를 열었다고 한다 . 아리타야키 산업화의 기반이 이곳에서 다져진것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각 번의 영지에서도 도석이 채굴되면서 히젠의 도자기는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게 된다 .

자기 예술의 원점

초기 일본 자기는 흰 바탕에 색을 칠하는 단순한 디자인의 청화백자가 많았다 . 미완성에서 느껴지는 소박함 속에 중국을표현한 듯한 문양도 찾아볼 수 있다 . 형태가 뒤틀린 것 , 채색의 발색이 불안정한 것도 많았다 . 그러나 마침내 흰 광택이 나고강도가 뛰어난 자기는 일본인의 감성에의해 기능적 , 장식적으로 발전해 갔다 .

이즈미야마 자석장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바위 표면은 대체얼마나 많은 양을 채굴했는지 짐작조차할 수 없다.

청화백자 산수도 꽃잎 모양 큰 접시
[국가 중요문화재]
이마이즈미 기치로 기부, 사가현립규슈도자문화관 소장

1640~50년대에 아리타·얀베타 가마에서 구워진 청화백자. 아리타 자기의 기술 혁신을 보여주는 명품.

도잔 신사
청화백자기법으로 당초무늬가 섬세하게 채색된자기로 만들어진 도리이가 압권이다. 이 밖에도고마이누와 대형 푼주, 울타리까지 자기로 만들어져 있다.

제2장 백화요란 , 도자기의 광채
~사가·나가사키 도자기 산책~

빛나기 시작한 ‘하얀 보석’

아리타에서 자기가 구워지기 시작한지약 30년 후 , 중국에서 전해온 기법을 토대로 초대 가키에몬이 일본에서 처음으로적회 ( 赤繪) 를 구워내는데 성공했다 . 자기의 백색은 화려한 모양을 그리기 위한캔버스가 되었고 , 도기와 목제식기에서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무늬가 표현되었다 . 이는 계절별 요리에 그릇을 맞추는 일본 특유의 대접 문화로도 이어져 새로운음식문화 탄생을 뒷받침하였다 .
 1660년경 사가번은 이마리 오카와치야마로 직영 가마를 이설한 뒤 채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헌상용 자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 정교한 선이 살아있는 ‘아이나베시마’, 청화백자기법으로 흰 바탕에 보통 빨강 , 노랑 , 초록색으로 그림을 그려넣은‘ 이로나베시마’, 유약을 두껍게 발라 청록색의 색조를 깊게 표현한 ‘나베시마청자’ 등 1871년에 번청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사가번 직영 가마에 걸맞게 격식 있는 자기가 생산되었다 .

헌상품에서 생활자기에 이르기까지

히라도번 나카노에서는 17세기 초반부터 자기 소성이 시행되었다 . 그 후 도공들은 같은 영내에서 이미 조업하고 있던 미카와치로 옮겨가 히라도번의 직영 가마체제를 확립하고 근처의 아지로의 도석과아마쿠사의 도석을 사용하여 더욱 하얗고아름다우며 섬세한 자기의 제작을 추구했다 . 빛이 통과할 정도로 얇게 깎아내는‘난각수’, 격자 무늬와 꽃잎 모양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투각’,‘ 국화 장식 세공’ , ‘ 양각’ 등의 세공 기술과 섬세한 청화백자의 높은 품질은 미카와치만의 매력으로자리잡아 에도 막부 말기에는 유럽으로수출된 식기류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오무라번의 하사미에서는 17세기 말엽부터 도자기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 ‘구라완카데’라고 불리는 간소한 자기가전국에 유통되는 등 하사미야키는 생활자기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
 다케오 , 하사미와 산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우레시노에서는 다른 곳보다 조금늦게 자기 제작이 시작되었다 . 요시다 지구에서도 채색 자기를 생산하였고 일부는동남아시아로도 수출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 시다 지역에서도 소박한 청화백자가만들어졌다 . 아리아케해에 있는 염전 항구에서 짐을 옮기는 운송선을 확보함에따라 역참마을도 크게 활기를 띠었다고한다 . 이리하여 히젠의 각지에서 각 번의개성이 반영된 도자기가 생산되어 국내외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여갔다 .

가키에몬 양식은 ‘니고시데’라 불리는 유백색의 바탕에 여백을 활용하여 좌우 비대칭 구도로 상회를 그리는 참신한 표현이 특징이다.

채색 할미새 문양 접시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이로나베시마는 오카와치야마 사가번 직영 가마에서 최고의 재료와 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청화백자 백로도 세다리받침 접시
[국가 중요문화재]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오카와치야마의 사가번 직영 가마에서 1690~1710년대에 만들어진 나베시마 청화백자의 걸작.

<요시다야키>
채색 인판기법 선경도큰접시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에도시대 중반에는 중국의오수적회(吳須赤繪)를 본뜬 색채 자기도 만들어졌다.

<미카와치야키>
청화백자 삼단 투각문양 향로

<시다야키>
청화백자 코끼리어린이문양 꽃잎 모양의큰접시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시다야키에서는 인물과 동물을 희화적으로 표현한재미있는 청화백자 접시를많이 볼 수 있다.


채색 화분 문양팔각 큰항아리
간바라 컬렉션(아리타초 소장)


채색 초화 문양주기
간바라 컬렉션(아리타초 소장)

Epilogue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도자기와 미래를 향해

히젠의 도자기는 각 번의 지혜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가진 많은 도공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 도석이 있고 , 장작이 있고 , 강이 흐르는 히젠의 땅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 , 산업의 기틀을 다질 수있었다 . 산지에서는 매년 400년에 걸친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위업을 칭송하고또 다른 발전을 기원하는 도조제 ( 陶祖祭)와 도구 공양이 거행되고 있다 . 선인에 대한 감사와 지역의 미래가 풍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발상과 연구를 거듭하며 후계자들이 매일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 현재를살고 있는 젊은 힘이 도자기의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